김창기

from my life my way 2011. 8. 8. 22:29

가시나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데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때로는.... 이 노래를 쓴 사람이 하덕규씨가 아니라 나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이 노래를 쓴 사람이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나의 환자들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 속의 너무 많은 나들을 느낄 때면, 비워도 비워도 넘치기만 하는 나의 헛된 바램들에 버거워 할 때면, 나는 이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내 앞에서 너무도 많은 자신들과의 갈등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그 것은 이제 그만 잊으세요,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라고 말 해주고 싶은 아픈 상처들을 아직도 놓지 못 하고 만지작거려 진물이 흐르게 하고 있는 환자들을 볼 때면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이해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같이 아파하고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진다. 나도, 유명한 하덕규씨도, 그리고 이 노래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도 당신과 별다르지 않다는...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그러지 못 하는 것은, 그 것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처럼의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벽 때문이 아니라면, 주로 그 사람이 자신의 진실을 알아내고 자신을 싫어하게 되고 떠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 사람과 가까워진다면 얼마 안가서 애써 숨기고 있는 흉칙한, 형편 없이 모자라는 나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미 여러번 그러했던 것처럼 그 사람도 나를 미워하거나 나를 떠날 것이라는.... 그래서 결국 더 깊은 상처를 안고 다시 혼자 남겨지리라는 엄청난 두려움 때문인 것이다. 마음 한 구석의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그 사람은 너를 위로해 줄 수 있을꺼야!"라고 이야기 하지만, 다른 한 구석의 좀 더 힘이 센 나는 "!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냐? 있는 그대로의 너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은 당연히 너를 떠날꺼야! 너는 또 한번 그 거지같은 너의 진짜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거야?"라고 나를 책망한다.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는 나의 마음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꼿는다. 누구에겐가 나의 있는 그대로로서 사랑받고 싶은 바램은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라지지 않고.....

 

"아무 것도 느끼지 않게 도와주세요.."라고 말문을 열었던 환자가 있다. 나는 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얼마나 많은 고통과 번민에 시달렸기에 도대체 아무 것도 느끼지 않게 해달라는 것일까? 우울에 찌들어 너무 일찍 자리를 잡아버린 이마위의 주름들, 머리 속을 휘저어 놓고 있는 불안을 증명이라도 해주고 있는 것 같은 깜빡이는 눈, 물어뜯겨져 나가고 있는 입술, 꼼지락 거리는 손. "아니예요, 당신이 살아있는 한 아무 것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왜곡되지 않은 당신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느낌에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을 꺼여요. 제가 당신을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이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 밖에는 없어요."

 

과거의 나쁜 경험들, 주로 부모님께 받은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신념들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 벌써 한두살때 뇌의 회로들은 대충 자리를 잡기 때문에 2차선으로 뚫려야 했을 "나는 나쁠 수도 있다. 나는 부족할 수도 있다"라는 생각들과 이어지는 우울과 불안을 느끼게 하는 회로들이 광화문의 12차선 대로처럼 활짝 뚫려있고, 4차선 정도로 뚫려야 했을 "나는 괜찮아. 나는 잘 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해."라는 생각들과 연관되어 있는 기쁨, 자신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을 주관하는 회로들은 깊은 산속의 오솔길처럼 얇게 뚤려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란 잘못 뚫려있는 넓은 길은 사람과 차가 덜 다니게 해서 작은 길로 바꾸고, 좁은 길은 사람과 차가 많이 다니게 해서 넓게 뚫리게 만드는 역활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형편 없어요. 나는 벌써 마흔이니까, 이제는 결혼을 할 수도 없을 것이고, 능력도 없으니 지금의 직장에서 짤리지나 않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겠지요. 결국 하루 하루 살아갈 수 밖에 없을 터이니 제게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고생하지 않게 빨리 죽거나, 운이 좋아서 좋은 양로원에 가게 되는 것 말고는요?" 매일 되풀이되는 이러한 소모적인 자화상 그리기 작업에 익숙해진 나는 때로는 그 사람이 그려낸 그 사람의 모습을 진심으로 믿게 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깊은 우울에 동참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사람 때문에 나도 불행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곰곰히 나의 불행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 것은 내가 그 사람의 이미 40년 동안 갈고 닦아온 자신의 모습에 대한 비관스러운 묘사에, 그 섬세한 술책에 말려들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닳은 나는 그 사람이 다시 나를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가, 거의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긍정적인 혹은 희망적인 그의 모습을 잡고 놓지 않으며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당신이 그려온 당신의 모습은 당신이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신의 우울이, 당신의 불안이 교묘한 술수를 써서 마치 원래의 당신인 것처럼 위장하고 그려낸 사기에 불과하지 않아요. , 여기 이렇게 좋은 당신의 모습이 있잖아요?"라는 길고도 지루한 설득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제는 제발 당신의 쉴 자리를 만들 수 있기를, 양들이 침묵하기를, 혼자 슬픈 노래만 부르지 않아도 되기를, 그 수많은 ""들이 서로 화해하기를, 내가 여기에 속해있다고 느낄 수 있기를, 사랑받고 싶은 바램들이 헛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 되기를......

 

 

 

 

 

 

 

저문 길을 걸으며

 

작사, 작곡 : 조 동진

 

 

저문 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었다

 

아주 오래전 겨울 우리만 남았을 때

나는 네 여린 손을 잡고 어찌 해야 좋을지 몰랐었다.

 

무딘 세월은 흘러 아픔만 남았을 때

나는 내 침묵의 날들을 어찌 해야 좋을지 몰랐었다.

 

나는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가슴으로

아주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들어 너를 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너를 떠날 생각에

내가 나를 떠난 것도 나는 잊고 있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의 마음을 들키고만 것 같아 주춤하게 되곤 한다. 그리고 창피해서 닭살이 돋곤 한다.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마음 때문에 아주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들어 버리곤 했던 나날들, 그런 많은 오늘들... 나를 탓하기에 앞서 너를 탓하고, 이내 그렇게 너를 탓한 나 자신을 다시 탓하는 바보같은 악순환이 이제는 나의 일상인양 낮설지 않은...

 

  아마도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 싶다. 요즈음 같이 사랑의 노래로 시끄러운 사랑 없는 세상에서 "결국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너를 사랑할 수 없었다"는 마음 깊이 숨겨두고 싶은 고백이 그 현란한 공중파를 자주 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혹 조동진씨를 좋아하는 몇 몇 안되는 사람들일지라 하여도 작은 배,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 같은 예전의, 사뭇 소녀 취향적인(우울을 안 그러는 척 하면서 마음껏 치장한) 노래들을 더 선호할 것 같아서 말이다. 좀 더 자기 기만적인 아름다움과 가벼움, 위로와 안심시킴이 더 잘 먹혀들어가는 세상에서 조동진씨는 더 외로워질 것 같다. 하긴 그 것은 그 자신이 자초한 일이지만 말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형용사는 '아픔' 하나뿐인, 행동을 묘사하는데 일관하고 있는 이 노래에서 나는 늪과도 같은 우울을 느낀다. 음과 편곡은 오히려 즐거운 편인데도 말이다. 아마도 그 것은 조동진씨의 우울과, 그의 노래로 인하여 이끌어 내어진 묻혀있던 나의 일부를 함께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하루 저문 길을 거닐다 문득 돌아본 나 자신... 내가 어떻게 살아왔구나... 무엇을 그토록 피하고 싶어서 그렇게 애를 쓰며 살아왔구나... 잠시만이라도 무엇을 느껴보고 싶어서 그렇게 허둥대며 살아왔구나... 하는 깨달음. 아마도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러한 것들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더 바랄 수 있다면 그러한 나의 나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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